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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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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만준 댓글 0건 조회 5,176회 작성일 06-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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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재첩이 나는 곳은 섬진강뿐이다. 그곳에도 종패를 뿌리고 있으니 반쯤 양식인 셈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을 제하면, 공급처는 단일한데 수요는 많아 날이 갈수록 재첩 양이 달리는 형편이다.



1970년대 초 강변에 조성한 사상공업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 사상에서 엄궁에 이르는 유역에서 잡히는 낙동강 재첩은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강변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깨끗하고 고운 모래톱 물가에서 손만 넣으면 손바닥 가득히 재첩이 담길 정도로 많이 있었다. 신라대 문현병 교수의 기억이다. 그의 기억의 오솔길을 따라 낙동강의 추억을 드듬어본다.



1950년대 말~60년대 초 재첩국 집은 재첩국 ‘공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듯싶다. 당시 재첩국은 산란기인 4월 이전에 주로 많이 잡았다. 이른 봄이 제철이었다. 새벽 서너 시쯤이나 되었을까? 가마솥에 밤새 삶은 재첩의 껍질과 속살을 분리하기 위해 삽으로 퍼서 커다란 키에 담고 위아래로 내치는 소리가 정적을 가른다.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 소리는 거의 동틀 무렵까지 계속된다. 밤새 많은 양을 삶아 국물은 농축되어 점액처럼 끈끈하며, 색은 새파랗다.



동녘이 희끄무레 밝아올 무렵 재첩국 파는 아줌마들이 양동이를 이고서 소리 없이 하나둘 오가며 재첩 원액과 분리된 재첩 알을 담아 어디론가 서둘러 바삐 나선다. 원액에 물을 타서 먹기에 적당한 농도로 희석시켜 가게로 가정집으로 팔러간다. 그것도 진하여 가게에서는 물을 더 탄다. 그래도 아직 빛깔은 코발트색이다. 요즘의 잿빛 재첩국 빛깔과 판이하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아침, 고춧가루를 뿌려 넣고 최신 버전으로는 사위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처음 베어 낸 봄 정구지(부추)를 잘게 썰어 넣어 먹는 재첩국 맛은 그때 사상에 살았던 사람 빼고는 아무도 모르지 싶다. 옅은 황갈색 놋그릇에 담긴 재첩국의 파랑-빨강-초록의 천연스런 색상대비는 재첩국 고유의 냄새를 낳는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그 색은 냄새로 간직되고 있다.



매일 재첩을 삶아내고 버리는 껍질의 양도 만만찮다. 어른 엄지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재첩 껍질의 거무데데한 색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와 정겹게 여겨진다. 진흙 오솔길 위에 뿌려 놓으면 포장도로 못지않고, 밟는 촉감도 아주 좋다. 화단에도 뿌려 지력을 돋우기도 했다. 특히 잘게 부수어 봄풀과 함께 겨우내 잘 먹지 못한 닭에게 먹이면 다음날 달걀노른자 색이 샛노랗게 변한다.



구포나 대동 쪽에는 수심이 깊어 재첩이 나질 않는다. 깊은 강바닥에는 다른 조개가 살고 있지 싶다. 최근까지도 삼랑진에서는 이름은 모르지만 어른 팔뚝만한 길고 큰 조개가 잡히는 걸 본 적이 있다. 낙동강 중류인 남지에는 재첩이 있긴 하지만, 그리 많지 않다. 강변 모래 속에 널리 퍼져 있지도 않고, 한 곳에 몰려 살고 있다. 하구에 비해 먹을 게 적어서 그렇지 싶다.

한폭의 사생화처럼 그 시절 낙동강 풍경을 떠올리게 해준 문교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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