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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다리 마지막 들어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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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278회 작성일 07-03-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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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는 구한말까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목마장이었다.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으로 이주한 일본인들과 생계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영도로 모여 들어 주거지로 변했다. 1890년 영도 사람들의 뭍 나들이를 위해 나룻배가 생겼다.



당시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던 나룻배가 1895년부터 정기적으로 운항을 하면서 4척으로 늘어났다. 1904년 노·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자 영도로 이주하는 일본인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1910년에는 소위 통통배라 불리는 동력선이 나룻배를 대체했다. 1930년대에 는 통통배만으로 한계에 이르러 영도와 뭍을 잇는 다리 건설논의가 벌어졌고, 당시 해운업자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다리가 완공되면 1천t 이상의 배가 북항에서 남항 쪽으로 가려면 영도를 빙빙 돌아가야 하는데 소요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린다는 것.



대안으로 영도와 뭍을 잇는 해저터널을 뚫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결국 다리를 들고 내리는 도개식으로 결정했다. 영도다리는 1932년 3월 착공, 1934년 11월 완공했다.



영도다리의 전체 길이 214m 가운데 육지 쪽 31m를 전동식으로 들어올려 그 밑으로 1천t급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영도다리가 개통하던 날 영도와 뭍 양쪽에는 무려 6만여 명이 몰렸다고 한다. 당시 영도다리의 도개시간은 하루 7회로 각 20분씩이었으나 1935년 6월부터는 하루 15분으로 줄었고 횟수도 하루 2회로 줄었다. 영도다리는 1966년 부터 들어올리기를 중단했다.



부산시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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