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빗물과 1촌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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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517회 작성일 08-08-01 15:20본문
버려지는 빗물을 소중한 자원으로
회색도시를 초록도시로 만드는 법
배우 멜 깁슨이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 2006)’는 1200년 전 마야 문명의 잔혹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평화로운 부족의 전사 ‘표범발(Jaguar Paw)’은 어느 날 들이닥친 인간사냥꾼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다. 침략자들은 부족을 학살하고 ‘표범발’과 젊은이들을 거대한 피라미드가 즐비한 곳으로 끌고 간다. 그곳이 바로 찬란한 마야 문명의 심장부인 왕국이다. 잡혀간 이들은 왕국을 위해 높은 제단 위에서 산 채로 배가 갈려지고 목이 떨어져 나간다. 영화는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표범발’이 인간사냥꾼과 처절히 맞서며 자신의 남은 가족을 지켜낸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십자가를 앞세운 에스파니아 함선의 출현은 거대 문명의 종말을 암시한다. 마야 문명의 몰락 원인으로는 피지배층의 반란, 전염병, 에스파니아의 침략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2003년 스위스 연구진은 ‘마야 문명은 200여 년에 걸쳐 발생한 3번의 극심한 가뭄으로 붕괴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마야의 피라미드 재단에서 벌어진 인간 제물 의식은 결국 기우제였던 샘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의 많고 적음은 항상 국가적 중대사였다. 우리 조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뭄 또는 홍수가 발생하면 왕과 지배층은 자신들의 부덕을 하늘이 징벌한다고 인식하고 고행을 감내하며 치성을 드린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임종 할 때 ‘죽어 영혼이 돼 비를 내리게 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태종 기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 하는 데 농가에서는 태종우가 내린 해는 대풍이 든다고 믿었고 왕이 내리는 비이기 때문에 우산이나 도롱이로 비를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현대 역시 물은 적어도 많아도 걱정거리였다. 역대 정부는 치수를 위해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었다. 댐을 짓고 제방을 올렸으며 하수처리장을 건설하고 이를 연결한 하수관거를 땅 속 곳곳에 심어 두었다. 이런 과정에서 빗물은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대도시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서울의 경우 한 방울의 빗물도 땅속으로 들어 갈 수 없는 불투수층 면적 비율이 1962년 7.8%에서 2001년 47.1%로 증가했다. 빗물은 시커먼 하수관거를 통해 하류로 버려지고 있다. 빗물은 빗물이 아니라 단지 더러운 하수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하수는 줄어들고 하천수질 역시 나빠졌다. 예전 아이들이 멱 감고 놀았던 도랑은 추억이 되고 도시의 산들은 물기가 없어 푸르름을 잃어버렸다. 급기야 뜨거워진 도시를 식히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 오고 있다. 물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는 도시는 빛 좋은 개살구 일 뿐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빗물의 중요성과 도시의 물순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증진되고 있다. 국제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독일 및 일본의 경우 국가적인 빗물 활용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가정에서 빗물을 모아쓰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학교운동장, 공원 그리고 건물 지하에 물 저장 시설을 두거나 옥상녹화를 통해 빗물을 모아 쓸 수 있는 시설이 속속 증가하고 있다. 도시의 두터운 콘크리트 밑으로 빗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투수율 높은 보도블럭을 설치하거나 친환경 주차시설 등 새로운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렇게 모아진 빗물은 조경용수, 청소, 화장실, 세탁용으로 사용되고 실개천의 유지용수로도 이용되고 있다. 실제 서울 관악구 도림천 일대는 시민이 참여해 ‘희망의 빗물 저금통’운동이 한창 진행중인데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소규모 빗물 저장시설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강동구 금륜어린이집은 지역 단체들과 함께 시설 내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감자, 고구마와 화초를 키우는데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다.
빗물이 소중한 자원이라 인식하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방안까지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만큼 수돗물 생산량과 사용량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와 가정 살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며 지하수를 함양하고 하천의 유지용수를 공급하는 것까지 생각하다면 우리에게 주는 편익은 엄청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각 가정마다 빗물저금통과 텃밭을 만들어 빗물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주택 형태나 구조상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활 주변 자투리 공간에 화분을 두자. 옥상, 베란다, 집 앞 골목 등등 빗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에 화분을 두고 거기에 꽃과 채소를 심자는 것이다. 회색도시를 초록색으로 만드는 방법이자 현재 하수관으로 버려지는 빗물을 담아 둘 수 있는 공간이 돼 도시와 삶 주변을 촉촉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빗물과 1촌을 맺는다는 것은 곧 도시의 생명력을 더욱 짙게 만드는 방법이다. 지금 빗물과 1촌을 맺자.
- 이철재 환경연합 물하천센터 국장
김선애moosim@hkbs.co.kr/환경일보
회색도시를 초록도시로 만드는 법
배우 멜 깁슨이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 ‘아포칼립토(Apocalypto, 2006)’는 1200년 전 마야 문명의 잔혹한 역사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평화로운 부족의 전사 ‘표범발(Jaguar Paw)’은 어느 날 들이닥친 인간사냥꾼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다. 침략자들은 부족을 학살하고 ‘표범발’과 젊은이들을 거대한 피라미드가 즐비한 곳으로 끌고 간다. 그곳이 바로 찬란한 마야 문명의 심장부인 왕국이다. 잡혀간 이들은 왕국을 위해 높은 제단 위에서 산 채로 배가 갈려지고 목이 떨어져 나간다. 영화는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표범발’이 인간사냥꾼과 처절히 맞서며 자신의 남은 가족을 지켜낸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십자가를 앞세운 에스파니아 함선의 출현은 거대 문명의 종말을 암시한다. 마야 문명의 몰락 원인으로는 피지배층의 반란, 전염병, 에스파니아의 침략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2003년 스위스 연구진은 ‘마야 문명은 200여 년에 걸쳐 발생한 3번의 극심한 가뭄으로 붕괴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마야의 피라미드 재단에서 벌어진 인간 제물 의식은 결국 기우제였던 샘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의 많고 적음은 항상 국가적 중대사였다. 우리 조상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뭄 또는 홍수가 발생하면 왕과 지배층은 자신들의 부덕을 하늘이 징벌한다고 인식하고 고행을 감내하며 치성을 드린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임종 할 때 ‘죽어 영혼이 돼 비를 내리게 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태종 기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 하는 데 농가에서는 태종우가 내린 해는 대풍이 든다고 믿었고 왕이 내리는 비이기 때문에 우산이나 도롱이로 비를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현대 역시 물은 적어도 많아도 걱정거리였다. 역대 정부는 치수를 위해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었다. 댐을 짓고 제방을 올렸으며 하수처리장을 건설하고 이를 연결한 하수관거를 땅 속 곳곳에 심어 두었다. 이런 과정에서 빗물은 애물단지가 돼 버렸다. 대도시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서울의 경우 한 방울의 빗물도 땅속으로 들어 갈 수 없는 불투수층 면적 비율이 1962년 7.8%에서 2001년 47.1%로 증가했다. 빗물은 시커먼 하수관거를 통해 하류로 버려지고 있다. 빗물은 빗물이 아니라 단지 더러운 하수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하수는 줄어들고 하천수질 역시 나빠졌다. 예전 아이들이 멱 감고 놀았던 도랑은 추억이 되고 도시의 산들은 물기가 없어 푸르름을 잃어버렸다. 급기야 뜨거워진 도시를 식히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 오고 있다. 물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는 도시는 빛 좋은 개살구 일 뿐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빗물의 중요성과 도시의 물순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증진되고 있다. 국제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독일 및 일본의 경우 국가적인 빗물 활용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가정에서 빗물을 모아쓰면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학교운동장, 공원 그리고 건물 지하에 물 저장 시설을 두거나 옥상녹화를 통해 빗물을 모아 쓸 수 있는 시설이 속속 증가하고 있다. 도시의 두터운 콘크리트 밑으로 빗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투수율 높은 보도블럭을 설치하거나 친환경 주차시설 등 새로운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렇게 모아진 빗물은 조경용수, 청소, 화장실, 세탁용으로 사용되고 실개천의 유지용수로도 이용되고 있다. 실제 서울 관악구 도림천 일대는 시민이 참여해 ‘희망의 빗물 저금통’운동이 한창 진행중인데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소규모 빗물 저장시설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강동구 금륜어린이집은 지역 단체들과 함께 시설 내 조그만 텃밭을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감자, 고구마와 화초를 키우는데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다.
빗물이 소중한 자원이라 인식하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방안까지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만큼 수돗물 생산량과 사용량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와 가정 살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며 지하수를 함양하고 하천의 유지용수를 공급하는 것까지 생각하다면 우리에게 주는 편익은 엄청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각 가정마다 빗물저금통과 텃밭을 만들어 빗물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주택 형태나 구조상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활 주변 자투리 공간에 화분을 두자. 옥상, 베란다, 집 앞 골목 등등 빗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에 화분을 두고 거기에 꽃과 채소를 심자는 것이다. 회색도시를 초록색으로 만드는 방법이자 현재 하수관으로 버려지는 빗물을 담아 둘 수 있는 공간이 돼 도시와 삶 주변을 촉촉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빗물과 1촌을 맺는다는 것은 곧 도시의 생명력을 더욱 짙게 만드는 방법이다. 지금 빗물과 1촌을 맺자.
- 이철재 환경연합 물하천센터 국장
김선애moosim@hkbs.co.kr/환경일보